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-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

광장-최인훈

from Review/책 2008/08/06 12:58
  한국 문학 교육의 폐해로 계속 줄거리만 알고 있다가 요 근래에 겨우 읽었습니다. 문제 있다, 나. 줄거리만 알 때에도 아, 참 괜찮은 소설이겠구나 싶었는데 전문도 좋더이다. 예전에 정란 언니가 내용이 참 쌈박하다 그랬던가 간지난다 그랬던가. 읽는다 읽는다 하다가 그나마 읽었으니 다행이죠. 음. 다른 책들은 언제 다 읽어.
  한국 문학 중 리얼리즘 딱지 붙이고 나온 소설들을 별로 안 좋아합니다. 특히 근현대 문학 중에 전후 소설 너무 보기 힘들어요. 차라리 2~30년대 문학은 좀 보는 맛이 있는데 5~80년대 소설은 좀 답이 없달까. 그래도 80년대 후반 들어서부터는 좀 나은가 싶기도 하고요. 리얼리즘 소설들은 정말 다른 게 아니고 읽자면 감정을 밑바닥으로 아주 패대기치는 느낌이라 읽다 보면 자학하는 느낌이 들어요. 이상하게 한국 소설들이 다른 나라 소설들에 비해 더 핍진한 느낌이라(자 지금 저 단어 보고 웃은 사람들은 우리 학교 우리과 인증 ㄳ). 근래 나오는 현대소설은 그런 느낌이 좀 더 판타지적으로 부풀려져 있어서 읽기에 좀 맘이 편하죠. 그런 의미에서 모더니즘과 포스트 모더니즘이 좋아요. …뭐 이 이야기는 예전에도 한 것 같고 앞으로도 죽자고 할 이야기이니 넘어가고요.
  최인훈의 광장은, 언니 말대로 굉장히 쌈박했어요. 특히 문체가. 6.25 동란 터지기 이전에 댄스파티 열고 있는(심지어 블루스를 춘다…) 등장인물들이라든가는 좀 신기했지만요. 문체는 정말 아, 대단하다 싶더라고요. 읽으면서 자꾸 맘 속에 채이는 느낌이랄까. 이런 맛에 순문학 읽는 거지 싶었어요. 사실 장르문학에서 문체에 힘이 있는 작가는 굉장히 드물다고 생각하거든요. 어쨌건 광장의 문체는 매우 강단있기도 하고, 뭔가의 감정선을 불러일으키는 역할도 해 내서 읽는 데 참 좋더이다.
  그렇지만 역시 눈에 밟히는 이명준의 존재. 얘는 왜 이렇게 찌질한가요. 저는 이딴 사랑이 전망이 될 거면 전망 없어도 돼요. 사랑하는 여자 미래 망쳐가며 제 옆에 있어달라 조르는 게 네 사랑이냐. 이 구질구질한 자식. 그래도 그 시대에 섹스를 굉장히 덤덤하게 그려낸 건 좀 좋았어요. 덤덤하게, 랄까 음. 그냥 사랑의 좀 더 진득한 표현이라고 본 게 되게 모던하다 싶었달까. 그렇지만 이명준 이 찌질이는 짜증나요. 그래놓고 지식인이다 외치지 마! 아니, 지식인이랑 관계 없는 건 알지만.

  이념이 전망이 아니라, 사랑이 전망이라는 작가의 주제 의식은 아주 마음에 들었어요. 그래서 이명준의 자살로 끝맺는 작품의 결말이 비관적 결말이 아니라 전망을 획득하는 긍정적인 결말이라고도 생각했고요(이걸 부정적 결말로 보는 건 좀 많이 작품을 잘못 읽었지 싶은데-.-). 그렇지만 이명준의 사랑이 제게 있어선 전망을 획득할 수 있는 사랑이 아니라 이게 참 문제. 그런 사랑으로 전망 획득할 수 있는 건 너밖에 없잖아 짜샤. 상대방은 어쩌라고 임마. 이 작품의 한계점이라고 생각합니다. 이 찌질한 사랑아. 사랑이 구질구질한 건 문제되지 않고 오히려 더 좋은 소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만 이명준의 사랑은 그런 사랑이 아니라 그냥 짜증 샘솟는 사랑이었어요. 최소한 제겐. 그렇지만 그 한계를 모두 끌어 안는 최인훈 문체의 힘. 여러 번 고쳐 썼다 하던데 그만큼 고친 성과가 있는 것 같습니다.
2008/08/06 12:58 2008/08/06 12:58
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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  1. Subject: 최인훈, <광장/구운몽>, 문학과지성사.

    Tracked from 世界はネオハピ! 2009/03/02 16:32  delete

    누구나 한 번쯤 이름은 들어봤을 &lt;광장&gt;. 특히 명준이 끊임없이 "중립국."을 되뇌이는 장면이 6차든 7차든 국어 교과서 한쪽에 당당히 실려있으니 아마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. 나 역시 &lt;광장&gt;을 그 정도로 기억하고 있었다. 그러다 julia님의 블로그에서 &lt;광장&gt; 서평을 읽고는 이 책의 전체 내용이 궁금해져서 질렀다 -_- 다 읽고 나니 "중립국." 장면은 그저 소설 속의 한 장면에 불과하...

  1. 아침의전령 2008/08/06 14:05  address  modify / delete  reply

    핍진(...)

    '중립국'을 계속해서 외치는 그 장면 하나만으로도 멋진 작품이었죠.

    이제 회색인을 보시는 겁니다.(응?)

  2. julia 2008/12/01 22:17  address  modify / delete  reply

    읭 벌써 권순회 선생님 수업 들었니 ㅋㅋ

  3. 샤방샤방 2008/08/06 15:31  address  modify / delete  reply

    핍진-_- 한번도 선생님 수업 안들었으나 웃었으니 나 인증된거냐-_-! 난 사춘기 시절 참 좋아했는데, 특히 그부분 좋아. 갈매기 보면서 '한 여자가 떠올랐다. 토굴 속에서 안에 몸을 풀었던 여자가-'어쩌구 저쩌구 여튼 어머니의 이미지와 자기가 좋아하던 여자 이미지랑 연결지었던 느낌. 그당시에 여자로서의 자아를 찾기 위해 몸부림치던 시절이라 더 와닿았는지도 모르겠군.

  4. julia 2008/12/01 22:17  address  modify / delete  reply

    여 여자로서의 자아. 건 그렇고 너 정말 아직 권쌤 수업 안 들었구나 푸하하하하하. 그 부분 나도 좋았는데 이 친구 사랑의 과정이 난 도무지 납득도 안 가고 짜증만 나서....ㅇ<-< 근데 참 괜찮아 보인다니 대단한 소설이야. ㅇ<-<

  5. 玄月 2008/08/06 21:58  address  modify / delete  reply

    역시 핍진이란 단어는 좀 대단한 듯'ㅅ' 난 광장으로 현대문학강독 서평 과제를 냈더랬지. 본문은 재밌는데 내가 들고있는 40주년 기념판은 개정판마다 덧붙여진 작가의 서문에다가 기행기 비스무리한 것까지 겹쳐져 있어서 좀 많이 무겁더라-_-. 여튼 3학년을 마무리하는 묘한 때랑 겹쳐 있어서 나는 방황하는 명준에게도 잠깐 공감. 뭐, 사랑의 방식은 역시 찬성할 수 없지만.

  6. julia 2008/12/01 22:17  address  modify / delete  reply

    그 단어 진짜 위력 있지... 40주년 기념판도 있어? 이 작가 이거 가지고 무진장 우려먹누만 푸하하하.

  7. julia 2008/12/01 22:17  address  modify / delete  reply

    ㅋㅋㅋㅋㅋ뭐 수업 안 들어도 알 정도로 애들이 떠벌리고 다녔었나 ㅋㅋ

  8. 하늘바다 2008/08/07 18:36  address  modify / delete  reply

    댓글 먼저 읽고 글을 읽었는데 나도 모르게 '핍진'을 읽는 동시에 피식했음ㄷㄷㄷㄷㄷ이 위대한 세뇌여, 순회여ㅋㅋㅋㅋ

  9. julia 2008/12/01 22:17  address  modify / delete  reply

  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순회의 힘

    핍진 가지고 이렇게 미친듯이 웃을 사람들이 몇이나 될까....